Turning Point 357

최무대, 정영태, 허지훈

3/17/2011 - 3/25/2011

Turning Point 357

DESCRIPTION

2011년 3월 18일부터 26일까지 갤러리 이마주에서 외부 기획전 <터닝 포인트 357>전이 열린다. 아카데미 보다와 갤러리 이마주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전시는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때 또 다른 세계로 전환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작가들의 독특한 시각은 우리가 항상 마주하던 세계를 환상의 세계로 만들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미디어 작가 김정현은 이번 전시에 대해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삶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삶을 관조하기 시작한 1년간의 부유물”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사진을 매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지난 1년은 나와 그들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라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현재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정영태, 오랜 세월 건축업에 종사해 온 최무대, 평범한 주부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허지훈이 바로 그들이다. 정영태. 도시의 인공조명이 만들어 내는 숭고한 세계를 보여준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세계가 인공조명에 의해 신비롭고 성스러운 공간으로 승화한다. <레테의 강>에서는 차들이 건너는 도구적 다리가 신과 조우할 만한 장소가 되고, <설레임>에서는 무심히 흘러가는 물의 표면이 천상의 빛이 흘러넘치는 공간이 된다. 정영태의 사진을 보며 중세시대 고딕성당을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야간 조명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더 많이 벌고 놀고 쓰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실제의 자신보다 더 좋게 보이도록 꾸미려는 욕망 등이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가장 세속적인 것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정영태는 탈바꿈 시키고 있다. 최무대. 건물이 가지는 조형성과 여행에 대한 기억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진의 소재와 구성은 건축업에 종사해 온 그의 인생을 배경으로 한다. <Ice Cube>에서는 건물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분리시켜 미적인 대상으로 삼았다. 오랜 시간 건물을 보아왔던 날카로운 시선 아래에서 건물들은 하나의 추상작품이 된다. 그러나 사진 표면으로 삶의 흔적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무엇인가 일어날 법한 아니면 무엇인가 일어난 듯한 긴장감을 던져준다. <Traveler>에서는 여행을 다니며 모았던 기념품으로 작업한다. 여행지의 기억을 담고 서울이라는 낯선 세계에 정착하게 된 기념품들은 자신들이 속했던 세계를 꿈꾸는 듯 하다. 기념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동경하는 미지의 장소를 꿈꾸게 만들며, 곧 저 멀리 보이는 서울을 넘어 그 어딘가로 우리와 동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최무대의 사진 속 대상들은 원래 그것들이 속해 있던 맥락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미적 형식 안에서 재탄생 되지만, 대상들이 다시 원래의 그것들이 속해 있던 맥락으로 되돌아 가고자 함으로써 묘한 긴장감이 발생시킨다. 허지훈.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사람을 찍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찍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찍거나 성격을 찍는다. 즉 <투쟁의 역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의 관계이며, <구보씨의 외출>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많은 구보씨들이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 사진을 보며 우리는 탐정이 되어 관계를 추측해 보고 성격을 분석해 본다. 실제로 길거리를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하다. 연인을 보며 몇 년 정도 사귀었는지를 추측해 보거나 입은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과 신분을 생각해 본다. 무의식적인 이러한 행동을 허지훈은 사진을 통해 공론화 시키고 있다. 자신들이 놓여있는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남다르다. 이 세 명이 작가들은 항상 우리가 보고 있어서 익숙한 듯한 현실을 한 번도 자각한 적 없는 낯선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45점의 사진 작업으로 구성되며 오프닝 파티는 18일 6시에 전시장과 1층 카페에서 진행된다. <4차원 속에 살기> 김연주 (전시 기획자) 흔한 말로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대학입시를 거쳐 취업전쟁을 치르고 치열한 먹이사슬의 경쟁 속에서 살다가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갈 때, 분명 그들이 보는 세상은 병에 걸리기 전과 다를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가 4차원의 세계가 아닐까? 이러한 4차원의 세계가 영상매체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진다. 드라마의 고전으로 부를 수 있는 ‘스타트랙’에서는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만 시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우리가 볼 수도 따라서 서로 소통할 수 없는 4차원의 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와 영화 ‘트랜스포머’는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사물들이 만들어가는 4차원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4차원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아진 세계일 것이다. 최무대, 정영태, 허지훈은 사진을 통해 4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들이 보여주는 4차원은 이상하지만 아름답고 낯설지만 따뜻하다. 늘 우리가 보고 있어서 사실 익숙할 법도 하지만 한번도 자각한 적은 없어서 낯설게 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천일야화처럼 다양하고 끝이 없다. 현실은 이야기 속 상상의 공간으로 바뀌어 가장 높은 초월의 장소가 되었다가 가장 낮은 심연의 장소로 바뀌며 다시 현실 바로 옆에 붙은 친숙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장소가 된다. 최무대는 건물이 가지는 조형성과 여행에 대한 기억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진의 소재와 구성은 건축업에 종사해 온 그의 인생을 배경으로 한다. <Ice Cube>에서는 건물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분리시켜 미적인 대상으로 삼았다. 오랜 시간 건물을 보아왔던 날카로운 시선 아래에서 건물들은 하나의 추상작품이 된다. 그러나 사진 표면으로 삶의 흔적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무엇인가 일어날 법한 아니면 무엇인가 일어난 듯한 긴장감을 던져준다. <Traveler>에서는 여행을 다니며 모았던 기념품으로 작업한다. 여행지의 기억을 담고 서울이라는 낯선 세계에 정착하게 된 기념품들은 자신들이 속했던 세계를 꿈꾸는 듯 하다. 기념품들은 우리에게 동경하는 미지의 장소를 꿈꾸게 만들며, 곧 저 멀리 보이는 서울을 넘어 그 어딘가로 우리와 동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최무대의 사진 속 대상들은 원래 그것들이 속해 있던 맥락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미적 형식으로 재탄생 되지만, 대상들이 다시 원래의 그것들이 속해 있던 맥락으로 되돌아 가고자 함으로써 묘한 긴장감이 발생한다. 정영태는 도시의 인공조명이 만들어 내는 숭고한 세계를 보여준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세계가 인공 조명에 의해 신비롭고 성스러운 공간으로 승화한다. <레테의 강>에서는 차들이 건너는 도구적 다리가 신과 조우할 만한 장소가 되고, <설레임>에서는 무심히 흘러가는 물의 표면이 천상의 빛이 흘러 넘치는 공간이 된다. 정영태의 사진을 보며 중세시대 고딕성당을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야간 조명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더 많이 벌고 놀고 쓰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실제의 자신보다 더 좋게 보이도록 꾸미려는 욕망 등이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가장 세속적인 것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정영태는 탈바꿈 시키고 있다. 허지훈은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사람을 찍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찍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찍거나 성격을 찍는다. 즉 <투쟁의 역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의 관계이며, <구보씨의 외출>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많은 구보씨들이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 사진을 보며 우리는 탐정이 되어 관계를 추측해 보고 성격을 분석해 본다. 실제로 길거리를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하다. 연인을 보며 몇 년 정도 사귀었는지를 추측해 보거나 입은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과 신분을 생각해 본다. 무의식적인 우리의 행동을 허지훈은 공론화 시키고 있다. 누구나 4차원을 볼 수 있지만 아무나 4차원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4차원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다. 어찌 보면 4차원을 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평화롭지만은 않을 수 있는 세계여도 또 하나의 세계를 더 가지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우리가 4차원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그들처럼 행복해 질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들이 우리에게 4차원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 이미지들을 틀 속에 가두어 주기 때문이다. 최무대, 정영태, 허지훈도 우리에게 자신들의 4차원을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는 이제 이들의 사진 속에서 행복해지기만 하면 된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세 명의 사진을 보다 보면 우리도 4차원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라며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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